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(문단 편집) === 말년 === 성 십자가 현양 주일이던 1224년 9월 14일 새벽,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산에서 기도하던 중 [[십자가]]에 못박힌 [[케루빔]]을 보고 [[예수 그리스도]]가 받은 다섯 상처를 자신의 손과 발, 옆구리에 똑같이 입었다.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[[성흔]]이며, 다른 성흔 체험자로는 [[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]], 카푸친회 소속이었던 [[오상의 성 비오]] 신부 등이 있다.[* 그 밖에도 많은 사례가 전해지고 있으나 [[교황청]]에서 인정하는 [[성흔]]은 성 프란치스코의 것 하나뿐이다. 카타리나나 [[오상의 성 비오]] 신부도 단지 성흔 때문에 [[성인(기독교)|성인]]이 된 것은 아니다.] 성흔 현상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었다. 그는 이 때 [[이탈리아어]]로 된 <태양의 노래>를 지었다[* 이것이 현재 개신교 찬송가에 수록된 '온 천하 만물 우러러'로 남아있다.]. 포르치운쿨라에 온 프란치스코는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해질 무렵, 자신에게 [[죽음]]이 다가온 것을 알자 동료 [[수도자]]들에게 자신이 걸친 옷을 모두 벗겨 잿더미 위에 눕혀달라고 하였다. 그런 뒤 그들에게 [[요한 복음서]]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[[시편]] 141편을 읊은 뒤 선종했다. 프란치스코에게는 죽음도 '자매'였다. 시편 141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. >주님, 당신께 부르짖으니 어서 저에게 오소서. 제가 당신께 부르짖을 때 제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. >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여기시고 저의 손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. >주님, 제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제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. >제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나쁜 짓 하는 사내들과 함께 불의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소서. 저들의 진미를 즐기지 않으오리다. >의인이 자애로 저를 때려도 저를 벌해도 좋습니다. 그것은 머릿기름, 제 머리가 마다하지 않으오리다. 저들의 악행을 거슬러 저는 늘 기도드립니다. >저들이 심판자들의 손에 떨어지면 제 말이 얼마나 좋은지 들어 알리이다. >누가 밭을 갈아 땅을 파헤쳤을 때처럼 저들의 뼈가 저승 어귀에 흩어지리이다. >정녕 주 [[야훼|하느님]], 제 눈이 당신을 향합니다. 제가 당신께 피신합니다. 제 영혼을 쏟아 버리지 마소서. >저들이 쳐 놓은 덫에서, 나쁜 짓 하는 자들의 올가미에서 저를 지키소서. >제가 탈 없이 지나가는 동안 악인들은 자기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게 하소서.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다음 날 성 조르조 성당에 잠시 묻혔다가 1228년 7월 16일 [[교황]] [[그레고리오 9세]]에 의해 시성된 후, 1230년 5월 25일 그를 기념하여 지은 [[성 프란치스코 대성당]]으로 이장되었다. 또한 1939년 [[이탈리아]]의 [[수호성인]]으로 선포되었고, 1980년에는 [[교황]] [[요한 바오로 2세]]에 의해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. 10월 3일 저녁 오후 해진 뒤에 성 프란치스코가 숨을 거두었는데, 당시의 전례적 기준에 따르면 일몰 뒤라 다음 날로 간주되었으므로 10월 4일을 프란치스코 축일로 정하였다. 지금도 [[프란치스코회]]에서는 10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밤에 전이예식(transitus)라고 하여 성 프란치스코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한다.[* 단, 카푸친회에서는 전이예식을 10월 4일에서 5일로 넘어가는 밤에 하는 관습이 있다.] 전이예식이라는 이름은 성 프란치스코가 그날 지상에서 천국으로 전이(옮겨감)했다는 뜻이다. 그 외에도 [[프란치스코회]]에서는 9월 17일을 성 프란치스코 수난상처 축일, 혹은 오상 축일이라고 부르며, 성 프란치스코가 라베르나산에서 성흔을 받았음을 기념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